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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짝퉁은 영혼을 베낄 수 없다(불쾌한 골짜기)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6-01-25 08:57:43
  • 수정 2026-01-25 08: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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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공간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하지만 그것을 겉모습만 베낀 공간은 '좀비'와 같다.
언뜻 보면 사람 같지만, 자세히 보면 생기가 없고 기괴하다.
손님은 그 미묘한 '불쾌함'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그랜드 오픈! '더 하이(The High) 국밥' 1호점]


[오픈 기념 전 메뉴 50% 할인! 소주 1,000원!]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서울 국밥 2호점: 더 헤리티지> 바로 맞은편 건물. 1층 통유리 매장에 거대한 현수막이 걸렸다.


강민석이었다. 그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그것도 아주 치졸하고 노골적인 방법으로.


"이... 이사님! 저기 좀 보세요!"


오전 10시. 출근하던 서은 씨가 사색이 되어 뛰어왔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맞은편 가게는 인테리어 공사를 끝내고 화려하게 문을 열고 있었다.


그런데... 기가 막혔다.


간판 폰트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우리 가게를 그대로 복사해 놓은 수준이었다.


흑단 마루 바닥, 현무암 타일 벽, 3000K 전구색 조명, 심지어 직원들이 입은 네이비색 셰프 코트까지.


"완전 똑같잖아요! 저거 표절 아니에요?"


서은 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달랐다.


규모가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15평 남짓인데, 저쪽은 50평이 넘었다. 게다가 가격은 반값.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우리를 말려 죽이겠다는 심산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더 하이 국밥입니다!"


확성기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반값 할인의 유혹은 강력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우리 가게로 오려던 손님들이 머뭇거리다 맞은편 가게로 우르르 몰려갔다.


우리 가게는 썰물처럼 텅 비어버렸다.


"이사님... 어떡해요? 손님들이 다 저기로 가요. 우리 망하는 거 아니에요?"


서은 씨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나는 팔짱을 끼고 건너편을 유심히 관찰했다. 내 눈에 보이는 '중력장'을 확인하기 위해.


그런데, 이상했다.


저쪽 가게의 중력은... '깨져 있었다.'


분명 우리와 똑같은 마감재, 똑같은 조명을 썼는데, 공간 전체가 픽셀이 깨진 화면처럼 지지직거리며 노이즈를 일으키고 있었다.


[부조화], [위선], [기괴함].


검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깜빡이고 있었다.


"서은 씨. 가서 밥이나 한 그릇 먹고 옵시다."


"네? 지금 밥이 넘어가요? 적진 한복판으로 가자고요?"


"적을 알아야 부수죠. 그리고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 '짝퉁'이 얼마나 엉성하게 만들어졌는지."





우리는 손님인 척 가장하고 '더 하이 국밥'에 들어갔다.


매장은 북새통이었다. 50% 할인 덕분에 사람은 꽉 차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직원들이 인사를 했다. 우리와 똑같은 네이비색 셰프 코트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엔 영혼이 없었고, 눈은 손님이 아니라 허공을 보고 있었다. 옷만 셰프지, 태도는 알바생 그대로였다.


우리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앉자마자 미묘한 '불편함'이 엄습했다.


'분명 조명은 전구색(3000K)인데... 왜 이렇게 눈이 아프지?'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실소를 터뜨렸다.


"바보 같은 놈들."


"네? 뭐가요?"


"조명 색깔만 베끼고, '각도(Angle)'는 안 베꼈네요."


우리 가게의 조명은 '눈부심 방지(Anti-Glare)' 처리가 된 딥(Deep) 타입 조명이다. 광원이 깊숙이 박혀 있어, 빛이 아래로만 떨어지고 사람 눈에는 직접 닿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의 조명은 겉모양만 비슷한 싸구려 확산형 조명이었다. 빛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앉아 있는 사람의 눈을 찌르고 있었다.


"어쩐지... 눈이 좀 시리네요."


서은 씨가 눈을 비볐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옆 테이블이랑 너무 가깝지 않아요?"


서은 씨가 옆 사람과 팔이 닿을까 봐 몸을 움츠렸다.


그렇다. 이곳은 50평이지만 테이블을 너무 빽빽하게 집어넣었다.


매출 욕심에 '심리적 거리(Personal Distance)'를 무시한 것이다.


옆 사람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거기에 웅웅거리는 소음이 더해졌다.


우리는 흡음재와 식물로 소리를 잡았지만, 이곳은 겉만 현무암 타일이지 천장은 그대로 뒀다. 소리가 딱딱한 벽에 부딪혀 공명(Echo)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끄럽고, 눈부시고, 비좁다.


겉보기엔 우리와 똑같은 '고급 한정식' 분위기인데, 막상 앉아 있으면 '도떼기시장'에 있는 듯한 인지 부조화.


이것이 바로 '공간의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다.


비슷할수록 더 불쾌하다.


"여기 국밥 나왔습니다."


직원이 뚝배기를 툭 던지듯 놓고 갔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떴다.


달았다. 조미료 범벅이었다.


"으... 맛이 왜 이래? 우리 육수랑 색깔은 비슷한데 맛이 전혀 달라요."


서은 씨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손님들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처음엔 "싸다", "분위기 좋다" 하며 들어왔지만, 막상 앉아 있으니 알 수 없는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밥을 먹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고, 대화는 단절되어 있었다.


머물고 싶은 공간이 아니라, '빨리 탈출하고 싶은 감옥'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강민석이 직원들에게 지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손님이 꽉 찼으니 성공이라 믿겠지. 하지만 그는 모른다. 저 손님들이 밥을 먹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 불편해. 그냥 싼 맛에 먹고 가야지.'


'체할 것 같아. 다시는 안 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시다, 서은 씨. 볼 것도 없네요."


"네? 벌써요? 뭐라도 약점을 잡아야죠!"


"약점 잡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 가게는 이미 죽어있거든요."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짝퉁은 디테일에서 죽습니다. 강민석은 껍데기만 흉내 냈지, 그 안에 담긴 '배려의 밀도'는 흉내 내지 못했어요. 1주일... 아니, 오픈빨 빠지는 3일이면 끝납니다."





가게로 돌아온 우리는 평소처럼 저녁 준비를 했다.


저녁 7시. 여전히 맞은편 가게는 북적였고, 우리는 한산했다.


서은 씨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문쪽만 바라봤다.


"이사님 말대로 진짜 손님이 돌아올까요? 저쪽은 소주가 천 원인데..."


"가격으로 싸우는 손님은 우리 손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치'를 알아보는 손님을 기다리면 됩니다."


딸랑-


그때, 문이 열렸다.


점심에 우리 가게를 왔다가 자리가 없어 맞은편으로 갔던 단골, 중견기업 김 상무님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상무님."


왕 셰프님이 정중하게 맞이했다.


김 상무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살 것 같네. 아까 점심에 앞집 갔다가 체하는 줄 알았어."


"맛이 없으셨습니까?"


"맛도 맛인데, 정신 사나워서 원. 눈은 부시고, 옆 사람은 떠들고, 직원들은 그릇을 집어 던지고... 겉만 번지르르하지 영 아니더라고. 역시 국밥은 여기서 먹어야 소화가 돼."


그는 편안한 표정으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3000K의 따뜻한 조명, 적당한 테이블 간격, 정중한 서비스.


완벽한 중력이 그를 감싸 안았다.


"수육 하나랑 소주 주세요. 아, 그리고 여기 팁."


그가 5만 원을 건넸다. 맞은편 가게 소주 50병 값이었다.


이것이 증명이었다.


진짜를 경험한 사람은 절대 가짜에 만족할 수 없다.


그날 저녁, 하나둘씩 단골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앞집 갔다가 너무 시끄러워서 다시 왔어요."


"거긴 옷에 냄새가 너무 배요. 여기가 쾌적하네요."


밤 10시. 마감 시간.


우리 가게는 다시 만석이었다. 반면, 창밖으로 보이는 '더 하이 국밥'은 휑했다. 반값 할인을 하는데도 저녁 술손님이 없었다.


술은 편안해야 마시는 법이니까. 불편한 의자와 눈부신 조명 아래서 취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서은 씨가 활짝 웃으며 셔터를 내렸다.


"이사님! 우리 이겼어요! 진짜 중력이 가짜를 이겼어요!"


"당연한 결과입니다. 공간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요."


나는 맞은편 건물, 불 꺼진 텅 빈 매장을 바라보았다.


강민석. 네가 가진 돈으로 벽을 바르고 조명을 달 수는 있겠지.


하지만 '공기의 질감'과 '시간의 밀도'는 돈으로 살 수 없어.


그건 오직,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만 나오니까.


띠링-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 [The High 강민석].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패배를 인정한 건가, 아니면 또 다른 수작을 부리려는 건가.


"여보세요."


-차이현 씨. 축하해. 국밥집 하나는 잘 지키네.


그의 목소리는 비틀려 있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 내가 드림시티 푸드코트 건, 그냥 넘어갈 것 같아? 내일 아침 신문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뚜뚜뚜.


전화가 끊어졌다.


내일 아침 신문?


다음 날 아침.


가게 문 앞에 배달된 신문 1면을 보고 서은 씨가 비명을 질렀다.


[단독] 핫플레이스 '서울 국밥', 위생 불량 의혹? 식자재 재사용 논란


[푸드코트 '더 포레스트', 화재 안전 기준 미달... "식물 때문에 스프링클러 작동 안 해"]


언론 플레이였다.


공간으로 안 되니, 이제는 여론으로 죽이겠다는 심산.


전형적인 대기업의 횡포.


하지만 강민석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나는 전생에 '청담동 미친개'였다. 여론전? 흑색선전?


그건 내가 제일 잘하는 분야다.


"서은 씨. 우리 가게 CCTV 싹 다 백업하세요."


"네? 그건 왜요?"


나는 씨익 웃었다.


"쓰레기 기사에는 '팩트 폭격'으로 대응해야 제맛이죠.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서 USB 하나를 꺼냈다.


어제 '더 하이 국밥'에 갔을 때 몰래 녹음해 둔 파일.


직원들이 "사장님이 남은 반찬 재사용하라고 시켰어요"라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이걸 터뜨리면, 누가 진짜 쓰레기인지 세상이 알게 되겠죠?"


중력은 거짓된 것들을 가장 먼저 추락시킨다.


이제 강민석을 바닥으로 끌어내릴 차례다.





[차이현의 경영 인사이트]


Q. 왜 짝퉁 가게는 금방 망할까? (불쾌한 골짜기와 디테일)


잘 되는 가게를 그대로 베끼는 '미투 브랜드(Me-too Brand)'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90%는 원조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이유는 '보이지 않는 디테일'을 베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 공간의 불쾌한 골짜기 (Uncanny Valley of Space)


로봇 공학에서 로봇이 인간과 어설프게 닮으면 불쾌감을 주듯,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은 5성급 호텔인데, 조명이 눈부시거나(Glare), 소리가 울리거나(Echo), 냄새가 나면 고객은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느낍니다. 차라리 허름한 노포가 낫다고 느끼죠.


2. 조명 각도의 비밀 (Beam Angle)


고급 매장은 조명 갓이 깊은 '딥 타입(Deep Type)' 다운라이트를 씁니다. 빛이 눈을 찌르지 않고 바닥만 비추기 때문입니다. 반면, 저가형 매장은 빛이 사방으로 퍼지는 '확산형'을 씁니다. 똑같은 전구색이라도 확산형을 쓰면 공간이 촌스럽고 눈이 피로해집니다.


3. 테이블 간격의 경제학


매출 욕심에 테이블 간격을 좁히면(50cm 미만), 고객은 '침범당했다'고 느껴 빨리 나갑니다. 옆 사람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최소 심리 거리(약 70~100cm)'를 확보해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단골을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디테일이 퀄리티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디테일이 곧 퀄리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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