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속했던 이틀째 오후 4시. 아직 피크타임 전이었지만, 강민준은 넥타이를 매고 카운터 앞에 섰다. 그리고 검은색 세단 한 대가 그의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운전기사가 문을 열자, 깔끔한 정장 차림의 본사 영업관리팀 이사, 박성호가 내렸다. 박 이사는 냉정한 시선으로 민준의 가게 간판을 훑어보더니, 길 건너의 '육미대왕' 간판을 한 번 더 쳐다봤다. 그의 표정은 이미 '네가 나에게 불가능을 요구했다'는 비난을 담고 있었다.
“강 사장, 제가 오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박 이사가 악수를 건네는 민준의 손을 외면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틀 전, 저희는 2,000원 추가 요금제를 철회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 ‘메탈 불판 존’은 그대로 운영되고 있더군요.”
“이사님, 안으로 들어오시죠. 차가운 커피 한 잔 하시면서 이틀간의 결과를 확인해 주십시오.” 민준은 당황하지 않고 그를 가장 구석진, 하지만 홀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박 이사는 테이블에 놓인 '특제 명품 비빔 막국수(5,000원)' 메뉴판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막국수 유료화까지! 강 사장, 제가 농담으로 들립니까? 지금 길 건너 경쟁사 때문에 우리 점주들이 아우성인데, 당신은 가격을 올리고 있어요. 본사의 획일화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건 결국 브랜드 전체의 신뢰 문제입니다.”
“신뢰요? 제가 이 시스템을 유지해서 망하면, 그 신뢰는 누가 보상해 줍니까? 7억 빚을 지고 망한 점주가 본사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민준이 반문했다.
박 이사가 잠시 말을 멈칫했다. 민준의 눈빛에서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이틀간의 결과를 가져오셨겠죠? 숫자가 모든 걸 말해줄 겁니다.”
민준은 미리 준비한 태블릿PC를 박 이사에게 내밀었다. 자료는 '육미대왕 오픈 전후 3일간의 영업 실적 비교 분석'이었다.
구분 | 육미대왕 오픈 전 (D-3일 평균) | 육미대왕 오픈 후 (D+2일 평균) | 변동률 |
총매출액 | 500만 원 | 300만 원 | down 40% |
총 고객 수 | 250명 | 150명 | down 40% |
총 원가액 (폐기 포함) | 261만 5천 원 (원가율 52.3%) | 148만 5천 원 (원가율 49.5%) | down 2.8%P |
순수익 (임대료, 인건비 미포함) | 100만 원 | 61만 5천 원 | down 38.5\% |
프리미엄 존 이용률 | N/A | 고객 수의 15% | N/A |
“총매출이 40%나 떨어졌습니다! 강 사장, 이게 당신이 말하는 혁신입니까? 육미대왕이 고객을 다 끌어간 겁니다!” 박 이사가 테이블을 쳤다.
“맞습니다. 40%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원가율은 52.3%에서 49.5%로 2.8%포인트가 하락했습니다. 이사님, 이것은 뷔페 품목을 축소하고 폐기 관리를 강화한 결과입니다. 40%의 고객이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원가율을 줄여 출혈을 최소화했습니다.”
민준은 숨을 고르고 다음 자료를 보여주었다.
구분 | 육미대왕 오픈 후 2일간 통계 |
프리미엄 존 이용 고객 수 | 45명 |
총 진상 신고/항의 건수 | 1건 (기존 5~6건) |
프리미엄 막국수 판매액 | 9만 5천 원 (순마진 약 7만 원) |
폐기율 | 기존 대비 down 30\% |
“이것이 제가 목표한 진정한 혁신입니다, 이사님. 매출이 40%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진상 고객 스트레스와 폐기율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2,000원 더 내고 편하게 먹는 로열티 고객 45명과 5,000원짜리 막국수를 시킨 고객들이 나머지 60%의 매출을 지탱해 준 겁니다.”
민준은 태블릿을 덮었다. “결론적으로, 저는 마진율을 지켰습니다. 경쟁사가 '18,900원의 지옥'에서 마진율 1%의 출혈 경쟁을 할 때, 저는 '22,900원의 가치 경쟁'을 시작한 겁니다. 본사는 40%의 이탈 고객에게 집중하지만, 저는 남은 60%의 '알짜배기 고객'을 지켜냈습니다.”
박 이사는 말이 없었다. 그가 본 것은 40%의 매출 하락이 아닌, '폐기율 30% 감소'와 '원가율 49.5%'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시스템 안정화'였다. 만약 민준이 규정을 따랐다면, 매출은 40% 하락하고 원가율은 52% 그대로 유지되어, 순식간에 월 수천만 원의 적자에 빠졌을 것이다.
“강 사장. 당신의 시도는 규정 위반입니다.” 박 이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는군요. 원가율을 50% 아래로 내린 건 대단합니다.”
그는 이내 냉정한 사업가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대로는 곤란합니다. 만약 다른 가맹점들이 당신을 따라 이 '메탈 불판 존'을 도입하려 한다면 시스템이 무너집니다. 저는 본사에 돌아가 이 시스템을 정식 서비스로 편입시킬지 검토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겠습니다.”
민준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정식 편입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당신의 가게를 'R&D 테스트 베드'로 삼겠습니다. 당신이 앞으로 도입할 모든 혁신 전략은 반드시 본사에 사전 보고해야 하며, 그 수익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만약 이 시스템이 실패한다면, 당신은 계약 위반으로 패널티를 받게 될 겁니다.”
“좋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민준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제 그는 본사의 통제를 받는 점주가 아니라, 시스템을 함께 설계하는 전략가로서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박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문을 나섰다. 민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육미대왕의 대기 줄은 여전히 길었지만, 민준의 마음은 불안 대신 확신으로 가득 찼다. 그는 이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 '대박 난 시한폭탄'을 진정한 황금알로 바꾸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5화] 경영 인사이트 (Behind the Scene)
💰 인사이트: 매출 방어가 아닌 '마진 방어' 전략
1. 매출 감소의 역설: 주인공의 매출은 40% 감소했지만, 원가율과 폐기율, 진상 스트레스도 동시에 감소했습니다. 이는 사업의 '질적 개선'을 의미합니다. 규모가 줄더라도 핵심 고객과 핵심 메뉴에 집중하여 순마진을 지키는 것이 출혈 경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2. 데이터 기반의 협상력: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협상에서 감정이나 주장보다 중요한 것은 '숫자'입니다. 주인공은 규정 위반에도 불구하고, 원가율 하락과 폐기율 감소라는 구체적인 '수익 개선 데이터'를 제시함으로써 본사를 설득하고 오히려 혁신을 위한 지위를 얻어냈습니다. 이는 데이터를 무기로 활용하는 경영자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3. 마진율 1%의 가치: 경쟁사가 18,900원으로 마진율 1% 미만의 출혈을 감수할 때, 주인공은 19,900원(기본) 또는 22,900원(프리미엄)을 유지하며 '마진'을 확보했습니다. 이 마진은 곧 다음 혁신(R&D)을 위한 '총알'이 됩니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원을 보존하는 능력입니다.
( 다음 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