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얼마 전 지인과 저녁 약속이 있었습니다. 요즘 뜨는 곳이라며 찾아간 식당 입구에서 저희를 맞이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번쩍이는 키오스크였습니다. 몇 번의 터치로 주문과 결제를 마치자 주방에선 로봇 팔이 분주하게 움직여 음식을 만들더군요. 잠시 후 서빙 로봇이 정확히 저희 테이블에 음식을 내려놓았습니다. 빠르고 정확했죠.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저희는 직원과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이번엔 허름하지만 오래된 골목의 한 노포를 찾았습니다. 주인 할머니는 "어여 와, 배고팠지"라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닳아빠진 메뉴판을 설명하며 "오늘은 이놈이 물이 좋아"라고 넌지시 추천해주셨습니다. 음식 맛도 맛이지만,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과 정겨운 손길이 섞인 그 저녁은 참으로 '따뜻한 경험'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두 식당의 차이가 단지 신식과 구식의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감히 이것이 2025년 현재, 모든 레스토랑 경영자가 마주한 거대한 갈림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산업의 지형을 바꾸면서, 우리 F&B 업계는 극명하게 나뉜 두 개의 대륙으로 쪼개지고 있습니다. 바로 ‘오차 없는 효율성의 제국’과 ‘대체 불가능한 이야기의 영토’입니다. 당신의 레스토랑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혹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첫 번째 길은 기술로 완성되는 완벽한 효율성의 세계입니다. 이곳의 유일신은 ‘데이터’이며, 목표는 ‘인간의 실수를 0에 수렴시키는 것’입니다. 인건비 상승과 구인난에 허덕이는 사장님들에게는 어쩌면 가장 매력적인 길일지 모릅니다.
미국을 한번 볼까요? 패스트푸드의 대명사 맥도날드는 이미 텍사스의 일부 드라이브 스루 매장에서 AI에게 주문을 맡기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AI는 복잡한 주문도 90%에 가까운 정확도로 알아듣고, 심지어 고객의 과거 주문을 기억해 메뉴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보스턴의 레스토랑 ‘스파이스(Spyce)’는 로봇이 웍을 돌려 샐러드 볼을 3분 안에 만들어냅니다. 재료의 양, 조리 시간, 소스의 배합까지 모든 것이 계산된 대로 움직이니 맛은 언제나 균일합니다.
이 물결은 이미 대한민국에 상륙했습니다. 서울의 ‘롸버트치킨’에서는 로봇이 정해진 시간과 온도로 치킨을 튀겨내고, ‘고피자(Gopizza)’는 AI가 도우 상태를 파악하고 토핑 양을 조절하며 화덕까지 관리합니다. 대기업 구내식당이나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서빙 로봇을 보는 것은 이제 낯선 풍경도 아니죠. 배달 전문 공유주방은 이 효율성의 길 끝에 서 있는 모델입니다. 최소한의 공간과 인력으로 오직 플랫폼상의 주문만을 처리하며 ‘가벼운 몸집’으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이 길을 선택한 레스토랑에서 ‘인간’은 시스템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로 축소됩니다. 고객은 저렴한 가격, 빠른 속도, 예측 가능한 맛이라는 ‘효용성’을 얻는 대가로 인간적인 접촉을 포기합니다.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바쁜 현대인에게 이보다 더 합리적인 선택지가 또 있을까요?
하지만 모두가 이 길로 달려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술이 모든 것을 대체할수록,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그 무언가의 가치는 더욱 치솟고 있습니다. 바로 두 번째 길, ‘대체 불가능한 경험’의 세계입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Noma)’를 보시죠. 그들은 한 끼에 수십만 원을 받지만 예약은 늘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고객은 단순히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셰프 르네 레드제피가 숲과 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식재료에 담긴 철학, 그리고 그날의 날씨와 계절을 접시 위에 구현한 한 편의 서사시를 경험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는 어떤가요? 셰프 마시모 보투라는 미술과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요리를 만듭니다. 그의 요리에는 이탈리아의 역사와 셰프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있죠. AI가 그의 레시피를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그의 인생과 철학까지 복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볼까요? 수많은 오마카세 식당들이 왜 인기가 있겠습니까? 고객은 셰프와 눈을 맞추고, 오늘 들어온 생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요리를 맛보는 그 ‘과정’ 자체를 소비하는 것입니다. 셰프의 입담과 섬세한 손길이 바로 그 식당의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입니다. 수십 년째 한자리를 지키며 3대째 두부를 만드는 강릉의 어느 식당, 제주 흑돼지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사장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제주의 한 식당 역시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름진 손과 구수한 사투리 속에 담긴 ‘진정성’과 ‘역사’는 그 어떤 첨단 기술로도 구현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길을 선택한 레스토랑은 음식뿐만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 직원의 접객, 그릇 하나에 담긴 이야기까지 모든 것을 팝니다. 고객은 기꺼이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지불하며 ‘감동’과 ‘기억’을 구매합니다.
자,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문제는 이 두 개의 길 사이, 어중간한 회색지대에 머무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키오스크 한 대 들여놓고 비싼 인건비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특별한 스토리도 없으면서 ‘프리미엄’이라며 가격만 올리는 식당들이 바로 ‘어중간함의 늪’에 빠진 경우입니다.
이런 식당들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식당에겐 ‘가성비’에서 밀리고, 경험을 파는 식당에겐 ‘가심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양쪽 모두에게 외면받으며 서서히 도태될 위험이 가장 큽니다. AI 시대의 생존 전략은 ‘양자택일’에 가깝습니다. 싸고 빠르거나, 아니면 아주 특별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방향으로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합니다.
사장님,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당신의 레스토랑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입니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효율적인 시스템입니까, 아니면 당신만이 들려줄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입니까? 정답은 없습니다. 어떤 길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 식당의 좌표를 스스로 정해야 할 시간이 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배에게 순풍은 불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디 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 앞에서 표류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선택이 앞으로 10년, 당신의 레스토랑의 운명을 결정할 것입니다.
늘 깨어 있는 당신과 레스토랑을 응원합니다~
인포마이너: ikjunj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