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우리는 왜 그 식당에 가는가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7-03 12:23:23
기사수정
  • 혀끝의 만족에서 마음의 만족으로, 공간 경험의 경제학
20년 전, 특별한 날의 외식은 '맛있는 음식' 그 자체를 향한 설렘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갓 나온 요리에 먼저 시선을 빼앗겼고, 대화의 중심 역시 음식의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음식이 나오면 숟가락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듭니다. 최고의 각도를 찾아 사진을 찍고, SNS에 공유하는 그 짧은 순간이 식사의 가장 중요한 의식이 되었습니다. 음식이 '콘텐츠'가 되고 소비자가 '연출가'가 된 시대, 레스토랑은 과연 무엇을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언제부터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가지 않고 '하러' 가게 되었을까요? "맛집 좀 찾아봐"라는 말 속에는 이제 단순히 맛있는 집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SNS 타임라인을 장식할 만한 근사한 플레이팅, 특별한 날을 기념할 만한 분위기, 그리고 그곳에 다녀왔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시대. 그렇습니다. 레스토랑은 더 이상 허기를 채우는 공간이 아니라, 욕망을 채우고 문화를 향유하는 '경험의 장'으로 진화했습니다.

   

과거 레스토랑의 성공 방정식은 비교적 명쾌했습니다. '맛', '가격', '입지'라는 세 가지 변수가 거의 전부였죠. 할머니의 손맛 같은 깊은 맛,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도 부담 없는 가격, 그리고 오가며 들르기 편한 위치. 이 세 박자가 맞으면 식당 문 앞에는 어느새 긴 줄이 늘어섰고, '동네 맛집'이라는 훈장은 수십 년간 단골을 불러 모으는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방정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합리적인 가격은 이제 경쟁의 출발선일 뿐,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가 되기 어렵습니다.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는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무대가 있습니다. 특히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SNS는 레스토랑과 소비자의 관계를 뿌리부터 뒤흔들었습니다. 과거 '며느리도 모른다'던 맛의 비법은 이제 수많은 리뷰와 사진을 통해 공공재가 되었고, 소비자들은 음식을 맛보기 전에 이미 그 경험을 상상하고 기대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혀의 즐거움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순간을 원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무엇을 먹었는가'보다 '내가 어디서 어떻게 경험했는가'를 증명하고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레스토랑 간의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같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도 '시칠리아 가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이닝'처럼 명확한 콘셉트와 스토리를 파는 시대입니다. 이는 단순히 메뉴의 차별화를 넘어섭니다. 공간의 인테리어, 흐르는 음악, 직원의 복장, 심지어 레스토랑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가령, 친환경이나 공정무역 같은)까지 모든 것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퍼즐 조각이 됩니다. 소비자들은 기꺼이 자신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해 줄 브랜드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이제 경쟁은 '가격'이 아닌 '가치'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독점적 경쟁'의 양상을 띠게 된 것이죠.

   

여기에 최근 '생성형 AI'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AI는 메뉴 개발, 고객 응대, 재고 관리를 넘어 레스토랑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새로운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섣부른 '대체'의 환상입니다. AI는 인간의 역할을 빼앗는 경쟁자가 아니라, 인간이 더 창의적이고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보완재'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레시피에 담긴 셰프의 철학이나 손님을 향한 직원의 따뜻한 미소까지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레스토랑 산업이라는 호수에 SNS와 AI라는 조약돌이 던져졌습니다. 그 파장은 거대하고, 변화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이제 레스토랑은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총체적인 경험과 가치를 설계하는 '문화 브랜드'로 거듭나야 합니다. 화려한 플레이팅과 세련된 인테리어,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한 운영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의 가장 깊은 곳에는 여전히 '맛있는 음식'과 '진심 어린 서비스'라는 변치 않는 본질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가장 똑똑한 기술도, 결국 사람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한 그릇을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요.



TAG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사이드 기본배너-유니세프
사이드 기본배너-국민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